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수다를떨다

기억


콘탁스  G1/ film scan / photo by mimic





어린날의 나의 첫사랑은 얼굴이 하얗고 키가 컸던 참으로 멋졌던 아이.
유별나게 어릴적의 기억력이 제로인 나지만, 그 아이와의 기억만은 여전히 선명하다.
그리고 또 한명의 장난꾸러기였던 한 아이.
내 어린날의 어두웠던 과거는 그 아이때문이었다.
언제나 나를 괴롭히고 나의 첫사랑을 방해했던, 그래서 역시나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아이.

성인이 되어서 간간히 들려오던 소식의 첫사랑은 유명한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선수가 되어있었고,
궁금했던 장난꾸러기 아이는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.

그렇게 세월이 흘러 삼십대 초반이 되던 해에 첫사랑을 만났다.
운명처럼 첫사랑의 전화번호 뒷자리는 우리집 전화번호 뒷자리와 똑같았다.

첫사랑은 아저씨가 되었다.
나를 괴롭히던 그 아이도 아저씨가 되었다.
하지만 만날 수 없는 그 아이가 참 많이도 보고싶었다.


그렇게 또 세월이 한참을 흘러 오늘 초등학교 동창이 전활 걸어왔다.
넌 왜 여전히 전화번호마져 그대로냐면서;;; (바뀌었거든 ㅠㅠ)



난 왜 모든것이 여전히 그대로일까. 좋은걸까? 나쁜걸까?



나를 괴롭히던 그 아이는 절대로 나를 괴롭힌 기억이 없다고 한다.
나는 그 아이때문에 어린시절 내내 우울했는데 말이지.

초등학교 동창이 뜬금없이 카톡으로 전화번호를 건네주며 연락해보란다.
궁금해한다고.

나도 궁금했어. 첫사랑보다 더 많이. 근데 전화하는게 맞는걸까? ㅎㅎ


나는 네게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을까?









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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