본문 바로가기

수다를떨다

참을성 없는 세상

contax g1 / film scan / photo by mimic


1.

세상이 점점 참을성 없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는 요즘입니다.
저부터도요. 남들이 내게 끼치는 불편은 조금도 참지 못하는 그런 이기적인 나날입니다. -_-

아침 출근길, 시간표 맞춰 지하철을 타는 동네인지라 매번 타는 시각은 정해져 있어요.
그래서 만나는 사람도 항상 비슷하고 이제는 아는 사람이라서 인사라도 해야 할 것만 같은 그런...
지하철 6호선 석계역에서 항상 같은 시각에 지하철을 타는 젊은 총각...이랄까, 고등학생 이랄까...
그 총각은 약 33%정도 부족해 보이는 총각입니다. 하지만 그가 남들에게 폐를 끼치는 건 아직 보지 못했어요.
다만 아주 작은 폐라면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아주 큰 소리로
누나, 어느 역까지 가세요?
아저씨 어느 역까지 가세요? 라는 질문을 하루도 빠짐없이 합니다.
근데 단 한번도 그 총각에게 답을 해주는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.
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여자들은 피해가고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은 답변을 안해주거나
왜? 라고 물어봅니다.
그럼 그 총각은 [궁금해서요] 라고 답합니다.
하지만 상대가 답을 하지 않으면 더 이상 아무 것도 하지 않아요.
오늘도 역시 총각은 어느 아저씨에게 질문을 합니다.
아저씨 어느 역까지 가세요? 라고
아저씨는 왜 물어보냐고 답했고, 총각은 궁금해서요, 라고 말합니다.
끝내 아저씨는 답을 안해주시고 마지 못해 내릴 때 말해줄께, 라고만 하십니다.
이내 총각은 조용해집니다.

근데 제겐 왜 안 물어볼까요? -_-
그 총각이 제게 누나라고 할지 아줌마라고 할지 그게 문뜩 궁금해졌습니다. ㅡㅡ;
뭐 어찌되었든 그 총각이 제게 질문을 하면 [고대역]까지 간다고 말해줄라구요.


2.

이른 아침 지하철에서 자리에 앉아 간다는 건 마치 축복 받은 일과 같은...
그래서 자리에라도 앉아 가는 날은 기쁘기까지 합니다.
이제 이사를 간지라 앉아 가는 일은 거의 불가능 해졌지만 이사오기 얼마 전에
다행이도 자리에 앉았습니다.
제 옆자리엔 몸도 날씬하고 이쁘게 생긴 아가씨가 다리를 꼬고 온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잠들어 있었습니다.
그 아가씨는 옆자리의 젊은 총각에게 거의 기대서 잠들어 있었습니다.
온몸을 이리 흔들 저리 흔들.
그 총각이 드디어 싫은 티를 내면서 온 몸으로 밀쳐버리니 그 아가씨는 이제 제게 기대어 잡니다.
그냥 기대어 잔다면 그냥 냅둘라고 하는데 어찌나 흔들흔들 기댔다가 떨어졌다가를 반복하는지
조금 많이 불편했지만 그냥그냥 참아 주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태까지 온몸을 기대어 오더군요.
신문을 보고 있었는데 신문 보는 것 자체를 방해할 정도로.
출근길이 얼마나 피곤한지 알기에 참을라고 했지만 결국 신문을 넘기는 척 그 아가씨를 살짝 밀었어요.
사실 그 아가씨가 꼰 다리만 펴도 그렇게 온 몸을 흔들면서 졸진 않을거 같았는데 그런 말을 할 수도 없고
우짜둥둥 그렇게 한번 밀었더니만 이 아가씨가 깨어납니다.
그러더니만 대뜸 제게 말합니다.
제가 자리의 선을 넘어 앉았으면서 왜 자기를 미냐고.
그래서 나보고 옆으로 가랍니다. 헉;; -_-
내가 자리를 일부러 선을 넘기고 앉았나요? 그렇게 비어있는 자리에 앉았을 뿐이고
그 아가씨와 나는 몸이 붙지도 않았는데 단지 선을 넘어 앉은 제 탓이랍니다.
진짜 언성을 높이며 싸우고 싶지도 않아서,
아가씨가 온몸을 흔들며 자니깐 옆에 사람이 불편하잖아요 그래서 밀었다고 말했더니만,
결국 조용히 있더라구요. 참나..이젠 지하철 자리에 선 넘겨 앉았다간 클날지도 모르겠어요. ㅡㅡ;


3.

마을버스가 자주 오지 않는 동네는 우짜둥둥 차가 오면 끼어서라도 함께 가야 합니다.
근데 다들 입구에 주로 몰려있는터라 못 타는 사람도 부지기수.
어느 아주머니 올라타면서 왜 다들 입구에 몰려 있냐고, 뒤로 좀 들어가라고 한마디 하십니다.
근데 순간 어떤 녀석(싸가지가 없어서 녀석도 아까운)이 [뭐?] 버럭 소릴 지릅니다.
버스 안은 이내 급격하게 조용해지고, 아주머니는 좀 들어가라구요. 라고 말합니다.
그러자 싸가지 바가지 녀석은 대뜸 [너 이리와!] 이럽니다.
지쟈스. 세상이 말세가 되어 가는거 같아요. 아줌마랑 합체해서 두들겨 패주고 싶었습니다.
차 안에 있던 남자들 아저씨들 빈말이라도 거들어 주는 사람 한명도 없더군요.
결국 지하철 역에서 내려서 그 아줌마와 그 싸가지는 서로 얼굴을 맞대고 쌈박질을 시작했습니다.
[너만한 아들이 있다고]
제가 봐도 아주머니는 나이가 지긋이 들어보였고
그 싸가지는 20대 초반.
정말이지 뭐가 그리 기분이 나빴는지는 모르지만 대뜸 [너 이리와] 라니...
정말정말 그런 인간은 비 오는 날 먼지가 나도록 디지게 패야 합니다.
제길, 출근이 늦지만 않았어도 아줌마 편드는건데;;
결국 저도 소심한 시민이었습니다.


4.

마을버스 정거장에 이르러서 어떤 여자분이 벨을 잘 못 눌렀습니다.
아저씨 죄송해요. 다음 정거장이에요. 라고 여자분이 말합니다.
그때부터 시작되는 운전기사 아저씨의 잔소리는 정말이지 도가 지나쳐 보였습니다.
내릴 정거장을 제대로 알고 눌러야지, 왜 잘 못 눌러서 서게 만드냐부터 시작해서
이제 좀 그만해도 되겠네, 싶을 정도로 잔소리에 잔소리.
내 일이 아니었어도 화가 났는데 그 여자분 내릴 때 아저씨 어린애도 아닌데 한마디만 하시죠. 라고만 하더군요.
정말이지 저였으면 아저씨랑 머리끄댕이 잡고 싸워버렸을지도 모릅니다. ㅜㅜ

요즘은 실제 전투력은 점점 저하되고 있는데
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전투력 급상승의 일들 뿐입니다.


왜 이러나요 다들??
요즘은 정말로 대중교통 안에서 일어나는 수 많은 일들로 소설책을 하나 써도 될 거 같습니다. ㅠㅠ
다들 좀 적당히 하자구요. 된장.


지하철 앞에서 선거유세 하는거 나름 홍보의 일환인건 알겠는데
제발 복잡하게 입구좀 막지 마세요.
늦어서 미친듯이 뛰고 있는데 전단지 나눠준다고 앞에서 알짱거리는 보면
확 밀쳐버리고 가버리고 싶어지니깐요.




덧,

다들 참을성을 상실하고 있지만 홍대 앞의 하카다분코(라멘집) 앞에서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은
모두 행복해 보입니다.
별 맛도 없는 그 곳에서 한 두 시간을 기다리는 맘으로 세상도 살면 참 좋을거 같은데
하카다분코 옆 작은 카페에 앉아서 내다보니 다들 길게 늘어서서 마냥 기다리고 있습니다.(위 사진)
먹어보고도 그런걸까요? 냐하하하;;;


'수다를떨다' 카테고리의 다른 글

먹는 타령  (50) 2010.05.30
곧, 여름  (40) 2010.05.27
이사완료! 곧 컴백  (61) 2010.05.17
당분간 잠시...  (60) 2010.05.06
먹고 사는 일  (26) 2010.04.29